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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현실, 그사이

‘10대의 꿈’으로 돈 버는 연예기획사


‘10대의 꿈’으로 돈 버는 연예기획사
                                                                        
2007 3/27 뉴스메이커717호


대형 오디션에 스타 지망생들 장사진… 회사 홍보·마케팅에 활용


케이앤엔터테인먼트의 ‘오디션 버스’ 가 대구의 주택가에서 10대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진행하고 있다. <경향신문>


600여 명의 지원자 중에서 뽑힌 10명의 ‘카트걸’ 후보가 모인 방송현장에는 묘한 경쟁심과 긴장감이 흐른다.10명의
후보 모두 방송출연은 처음이기 때문에 약간의 실수는 있었지만, 자신의 장기를 보여 줄 때는 방청객 사이에서 감탄
사가 나올 정도였다.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10명의 후보는 자신가 가진 모두 재능을 보여주기
위해 진땀을 흘렸다.

2006년 10월 처음으로 열린 ‘제1회 카트걸 선발대회’ 현장은 10대 후보들의 뛰어난 끼와 실력으로 뜨겁게 달궈졌다.
10명 중에서 선택받은 이는 단 3명뿐. 서혜진양(18)이 1위에 입상해 ‘카트걸’로 선정됐고, 김모양과 정모양이 그 뒤
를 이었다. 서혜진양은 카트걸을 발판삼아 SBS 월화드라마 ‘사랑하는 사람아’에서 윤진주 역으로 데뷔하는 데 성공
했다. 하지만 나머지 카트걸 두 명은 아직까지 연예계에 데뷔하지 못하고 있다.


커미션 받고 길거리 캐스팅 나서

  길거리 캐스팅을 하기 위해 학교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기획사 매니저.<김세구 기자
>

채림, 한효주, 김은주, 이인혜 등을 배출한 ‘미스 빙그레’의 성공에 자극받은 기업들이 10대를 타깃으로 하는 모델선발대회를 경쟁적으로 열고 있다. 의류업체인 엘레세는 2003년부터 ‘엘레세 모델선발대회’를 열고 있고, 온라인 게임 업체에서는 ‘MISS MU 선발대회’나 ‘워너비 카트걸 모델선발대회’ 등을 열어 10대 네티즌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동대문 쇼핑몰 헬로apM에서는 2003년부터 ‘헬로스타 선발대회’를 개최, 10대들의 끼를 보여주는 대회로 자리잡았다. 동아TV에서는 ‘스타메이커 선발대회’를 열어 스타가 되어가는 트레이닝 과정을 방송하고 있다. 패션잡지인 ‘보그걸’에서도 ‘보그걸 쿨걸·쿨보이 선발대회’를 열고 있다.

이렇듯 10대를 대상으로 한 모델선발대회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연예인이 되고 싶은 10대 청소년들의 폭발적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기업체의 모델선발대회에 나가면 연예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기업은 이 같은 10대의 꿈을 자사의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 10대 청소년에게 가장 각광받고 있는 대회는 ‘스마트 학생복 모델선발대회’다. 신화, SS501, 동방신기가 모델로
나설 정도로 교복시장 규모는 크게 성장을 했다. 교복 모델선발대회에서 수상을 하면 톱스타와 함께 모델로 설 수 있다
는 사실에 10대 참여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년에 한번 열리는 모델선발대회지만, 지난 6회 때는 4천여 명의 학생들이 참가원서를 내 그 인기를 실감케 했다.
이 대회에 참가하는 학생 중 10% 이상이 기획사에 소속돼 있을 정도로, 스마트 학생복 모델선발대회는 연예인으로
데뷔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꼽히고 있다. 송혜교, 고은아, 김은주 등이 이 대회를 통해 연예계에 진출한 스타들이다.

스마트 학생복 모델선발대회 담당자인 SK네트웍스 김병섭 대리는 “교복 장사는 1년 내내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탓에 비시즌 기간에 브랜드를 알리는 방법으로 교복 모델선발대회가 큰 효과를 얻고 있다”며 “이 대회를 통해 연예계에 진출한 아이들이 잘되면 회사 홍보에도 큰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모델 선발대회 부모들이 더 열성

 위부터_제6회 스마트 학생복 모델 선발대회 모습. 제2회 
 MISS MU 선발대회모습.제2회 엘레세모델 선발대회 모습.

기업과 함께 모델선발대회를 기획하고 있는 MTM의 김윤미 대리는 “보통 기업들의 선발대회가 열리면 500~1000명 정도 몰리는데, 요즘에는 부모들이 더 적극적인 것 같다”며 “이런 선발대회가 자녀를 연예인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모델선발대회가 많아지면서 부작용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교복모델 지원자를 모집해 10대 여학생을 상대로 음란한 사진을 찍고, 성추행을 한 김모씨(30)가 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 단적인 사례. 김씨는 2003년 9월부터 3백여 명의 여학생을 상대로 사기행위를 벌였지만, 학생들은 모델이나 연예인을 시켜준다는 말에 성추행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사기행위가 4년이나 지난 후에야 발각된 이유다. 또한 소규모 회사가 개최한 모델선발대회에서 1위를 했던 10대 여학생은 “‘접대’를 해야만 1위 수상을 할 수 있다”는 말에 수상을 포기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기업들이 10대의 꿈을 자사 마케팅에 이용한다면, 10대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일부 소규모 기획사들의 횡포는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350여 개의 음반기획사가 가입하고 있는 한국연예제작자협회의 김명수 과장은 “길거리에서 캐스팅 제의를 받았는데, 어떤 기획사인지 알려달라는 문의 전화를 많이 받고 있다”면서 “소규모 기획사에서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아카데미 형식으로 운영되는 학원이라고 보면 된다”라고 주의를 준다. 수강생을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길거리 캐스팅을 이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때 연예기획사를 직접 운영하다 지금은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조모씨는 “예전에는 중소기획사들이 신인 배출구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대형화 추세로 중소기획사가 죽고 있다”면서 “그런 중소기획사가 살아남기 위해 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변칙적인 방법으로 아이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고 설명한다. 인력 장사가 돈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 조모씨는 “길거리 캐스팅에 나선 사람들은 광고사원이나 영업사원이나 마찬가지”라며 “그들은 모집 인원에 따라 커미션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아카데미 교육비는 6개월 기준 평균 300만 원 수준. 이중 100만 원 정도가 학생을 유인해온 이의 몫이다.

학생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부모에게 자녀가 연예인의 자질이 있으니 오디션을 보라고 부추기는 경우의 상당수가 실상은 이 같은 학원의 영업사원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회사원 김성식씨(45)는 “어느 날 기획사 매니저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 중3 아들이 연예인 재목인 것 같다며 카메라 테스트를 받으라고 했다”며 “아이에게 물어보니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이어서 집전화번호를 알려줬다고 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연기학원에서 학생 모집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나머진 홍보용 들러리 가능성

물론 모든 연예아카데미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자질이 뛰어난 수강생을 검증된 기획사에 소개해 줄 역량과 네트워크를 갖춘 학원은 괜찮다. 문제는 그런 능력도 없는 학원이 상당수라는 점이다.

현행법상 기획사나 학원 설립이 쉽다는 것도 이런 가짜 매니저들이 활개를 치게 하는 요소다. 기획사는 ‘연예 대행
서비
스’로 신고만 하면 문을 열 수 있고, 학원은 ‘국내학원법’에 정해져 있는 일정 규모의 시설과 강사진만 있으면
가능하다.
설립이 쉬운 만큼 부작용도 많은 셈이다.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는 “길거리 캐스팅되는 것만으로 스타가 되는 줄 아는 10대들이 부지기수고, 10대 중
상당수가
보아나 문근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연예인이 되는 게 10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철저히 상업적 논리에서 만들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아이들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한 전문대에 출강중인 뮤지컬 작가 박새봄씨는 “학생들이 수업에 너무 관심이 없어서 주인공이 되는 법을
알려
주겠다고 하니까 그때서야 학생들 눈이 커졌다”라면서 “요즘 학생들은 기본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스타가
되려는 경향이
많다”고 지적했다.

오디션장이나 모델선발대회에 밀려드는 10대들을 비판할 수는 없다. 다만, 10대의 꿈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이비
기획사나
기업으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선발대회나 오디션 주최 측이 믿을 수 있는 곳인지를 꼼꼼하게 살펴
봐야 한다는 게 전문
가들의 조언이다. 
                                                                                                                  -로즈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