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송인의 길잡이/엔터테이너의 길

여배우가 된 헤밍웨이의 증손녀[인터뷰]

여배우가 된 헤밍웨이의 증손녀[인터뷰]


팝문화라는 큰 족보에서 볼 때 헤밍웨이 가문은 그 어느 가문보다 오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은 여배우 마리엘의 딸이고, 모델 겸 여배우 마고의 조카이자, 위대한 소설가 어니스트의 증손녀인 드리 헤밍웨이다. 10대 이후 성공한 모델로 살아온 그녀는 이제 여배우로 거듭나 이번주 금요일 개봉 예정인 영화 ‘스탈릿(Starlet)’에 출연한다.


24세의 드리는 산페르난도밸리 출신의 ‘제인’역을 연기한다. 제인은 야드세일에서 산 보온병 안에 돈이 든 것을 발견한 것을 계기로 ‘사디(베세드카 존슨)’라는 다루기 힘든 팔순 노파와 예기치 않은 우정을 쌓아가게 된다. 


영화는 기대와 예상을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두 인물 중 누구도 본래 가치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그건 제목도 마찬가지다. ‘스탈릿’은 제인이 키우는 치와와 이름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일하는 제인의 삶을 숨김없이 들여다보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제작비 25만 달러가 들어간 이번 영화의 감독과 공동각본을 맡은 숀 베이커는 첫 주연 연기를 위해 드리가 “헤밍웨이 가문을 떠올리게 하는 모든 것을 벗어버려야 했다”고 설명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영화제작자인 베이커는 한시간동안 스카이프로 대화를 나눈 후 드리를 캐스팅했다며 그녀가 가진 즉흥 연기력을 인정했다. “드리는 로열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난 이보다 더 위험한 캐스팅도 해 본 적이 있다.”


트라이베카에 거주하는 드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헤밍웨이 족보와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WSJ: ‘스탈릿’은 상당히 특이한 영화다. 대본을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나?


차라리 대역이 있었다고 말하면 좀 이해가 쉬울까?(웃음)


WSJ: 그럴줄 알았다.


농담이다. 나이든 여성과 우정을 쌓는다는 컨셉이 맘에 들었다. 남녀 간의 로맨스는 흔하지만 이건 색다르게 느껴졌다. 제인이라는 인물의 성격과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그녀가 성장해 나가는 과정도 맘에 들었다. 거의 즉흥적인 연기였다. 대본 자체는 매우 짧다.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도록 한다.


WSJ: 함께 출연한 베세드카 존슨에 비하면 영화 출연 경력이 많은 편이다. 존슨은 연기 경력이 전무한데도 이번에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다.


그녀는 YMCA에서 발탁됐는데 내가 아는 그 어떤 배우보다 자신감이 넘쳤다. 87세이고 인생을 살 만큼 살았지만 자기가 하는 말이나 행동을 의식하는 편이 아니다. 원하는 바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젊게 느껴진다.


WSJ: 영화 외적인 관계는 어땠나?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맘에 들었다. 꽤 귀여운 분이다. 처음엔 “아가씨처럼 친절한 사람에게 못되게 굴 수는 없다!”며 연기를 어려워하더니 내가 “못되게 구셔야되요”라고 고집한 후 한번 부담감을 내려놓고 나니 승승장구였다. 심지어 내가 “할머니, 진정하세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WSJ: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우린 제인이 캘리포니아 남부의 대표적인 산업인 포르노업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된다. 영화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난 원래 포르노에는 관심이 없었다. 불쾌감만 유발할 뿐이다. 하지만 제인은 이제 막 이 업계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에 굳이 이 분야에 정통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행복하고 즐겁게 그녀를 연기하고 싶었다. 제인은 난생 처음 일자리를 얻고 스스로을 돌보며 어딘가에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 세계에 더이상 머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이유도 다른 돌파구를 찾았기 때문이다.


WSJ: 사람들은 당신이 제인처럼 힘든 인생을 살지 않았을 거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모델일을 잘 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라 생각한다. 우리 가족으로 말하자면 (바로 이 점을 존경하지만) 내가 18살이 되자 “이제 너 스스로 살 길을 찾아봐”라고 선언했다. 나 스스로 뭔가를 일궈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덕분에 감사할 줄 알게 됐다. 모델일을 하는 젊은 여성들은 그 일을 계속하길 원치 않는다. 일부는 다른 길을 찾아 다른 일로 돈을 벌고, 포르노 연기를 정말 좋아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저 일일 뿐이다.


WSJ: 모친 마리엘이 당신 나이였을 때 당신을 영화 촬영장에 데리고 다녔다. 그 때 일 중에 기억나는 것은?


엄마가 아일랜드에서 TV용 영화 ‘9월’을 찍을 때였는데 바로 옆에서 ‘브레이브하트’를 찍고 있었다. 난 “엄마! 난 저쪽이 좋아요. 왜 저 영화에 출연하지 않는 거죠?”라고 말했다. 좀 웃겼던 거다. 난 어른들과의 의사소통이 더 쉽게 느껴졌다. 아이들과 있을 일이 별로 없다보니 내 또래 아이들과 있으면 불편했다. 항상 여행길에 있었기 때문에 항상 학교를 바꾸거나 홈스쿨링을 했다. 영화 세트장에서 산다는 건 그다지 화려하거나 근사한 일이 아니지만 재미있긴 하다.


WSJ: 당신이 다녔던 아이다호의 초등학교는 증조 할아버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이름을 딴 학교였다. 헤밍웨이라는 이름으로 산다는 건 어떤 것인가?


재밌는 건 헤밍웨이 초등학교에 다닐 땐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거다. 아이들은 (특히 아이다호에서는) 누가 자기팀에 낄 것인지, 누가 더 맛있는 점심을 먹을 것인지 같은 문제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다. 헤밍웨이 이름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사람들이 이름 같은 것에 관심을 보이는 곳인 캘리포니아에 오고 나서야 내 가문에 대해 인식하게 됐다. 난 유명한 사람들 틈에서 자랐기 때문에 스타를 동경하는 마음이 덜하다. 난 유명해지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게 아니다. 내겐 헤밍웨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것보다 나 자신으로 사는 게 훨씬 힘들다. [월스트리트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