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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의 길잡이/In My Opinion

"동이" 사실(史實)과 허구(虛構)


"동이" 사실(史實)과 허구(虛構)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

MBC 월화 드라마 "동이"가 인기를 끌면서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역사적 소재들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하지만 대부분으니 작가와 연출가의 머리에서 나오는 가상의 세계를 흥미위주로 이끌어 내는 만큼 사실과 허구가 미묘하게 깔려있게 마련이다.


"동이"를 열연중인 한효주(23)는 전통사극은 처음이지만 이미 우리에게 2008년 퓨전사극 "일지매"로 우리곁에 찾아 온적이 있어서
그렇게 낯설지가 않다. 드라마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한결 사극에 가까운 이미지로 변해 있었으며 대사의 자연스러움이 한결 나아진것 같다.

노비출신의 신분으로 입궐해 감찰부 궁녀를 시작으로 조선 19대 왕 숙종의 후궁이 되어 훗날 영조를 낳으며 성군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사람들의 뇌리엔 아직까지 드라마 "찬란한 유산"이란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은 시점에서의 연기변신을 기대하며 "대장금" 이영애 "겨울연가"최지우의 뒤를 잊는 훌륭한 한류스타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장악원은 어떤 곳이었을까?

이번 동이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 중에 하나가 장악원이다 이전의 시각적 아름다움과 음식의 미적인 아름다음이 있었다면 이번엔 아름다운 한국의 소리를 알 수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드라마 <동이>에서 자주 등장하는 관청은 “장악원(掌樂院)”이다. 동이의 오빠 동주가 해금을 연주하는 악공으로 소속되어 있었고, 동이가 포청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잠시 몸 담는 곳으로 나온다. 장악원은 글자 그대로 ‘음악을 관장’했던 예조(禮曹) 소속의 정3품 관청이었다.

조선은 백성을 교화하여 다스리는 ‘덕치(德治)’를 지향했기에 예(禮)와 악(樂)을 중시했다. 그러므로 음악은 통치 방편의 하나로 인식하여 별도로 음악을 담당하던 기관을 두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장악원 제조를 지냈던 성현(1439~1504)이 장악원 건물이 완공된 뒤 기록한 「장악원제명기(掌樂院題名記)」에서도 알 수 있다.



악공은 어떻게 선발되었나?

동이의 오빠 동주는 장악원의 악공으로 해금을 연주한다. 천인 신분으로 어떻게 중앙 관청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장악원 소속의 음악인 ‘악공(樂工)’은 향악과 당악을 연주하는 음악인을 가리킨다. 장악원에는 악공 외에 아악을 연주하는 악생(樂生), 스승인 악사(樂師), 여기(女妓), 무동(舞童) 등이 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전국적으로 동원되었는데, 직무 자체가 평민들이 부담하는 국역(國役)의 일종으로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즉, 양반 관원들처럼 봉급을 받는 직종이 아니라 병역 의무의 일종인 봉족(奉足)으로 지정하여 근무토록 했던 것이다.


오작인은 누구인가?


드라마 <동이>에서 동이의 아버지 최효원은 포도청의 명을 받아 시체를 처리하는 ‘오작인(仵作人)’으로 나온다. 실제로 조선시대에 오작인은 관아에
소속된 하급 아전으로, 시신을 검시할 때 시신의 옷을 벗기거나 몸을 만지는 등의 천한 일을 하던 자들이었다. 오작인은 구체적으로 어떤 존재였을까?

조선시대에는 살인, 자살 등 변사 사건이 발생할 경우 원칙적으로 시신이 발견된 해당 고을의 수령(서울의 경우 각 部의 부장)이 검시의 책임, 즉 검시관(檢屍官)을 맡았다. 행정권과 사법권, 수사권 등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은 당시에는 행정기관의 수장이 강력사건의 수사 및 검시까지도 떠맡고 있었던 셈이다. 한국학 자료센터에서의 표현은 조선시대 CSI라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오늘날 조폭같은 검계 그들은누구인가?

1623년 인종반정 이후 조선 정부는 서울의 향도계 해체를 위해 대대적으로 강공책을 편다. 초상시 상여를 메는 조직인 향도계가 반(反)양반 조직으로 변모해갔기 때문이다. 향도꾼들은 이에 부단히 저항하였다. 그 일부는 해체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직적이고 과격한 단체가 탄생하였다. 바로 이 단체가 검계였다.

주인과 부모를 배반한 노비와 양인 청년들이 주로 가입하였고, 향도계보다는 사람수가 적지만 통상 40~60명이 한 단위가 되었다.
이들은 주민들의 개와 돼지, 닭을 함부로 잡아먹거나 밤낮으로 모임을 가져 조직력을 키우는가 하면, 서울과 지방의 도적들과 연계하며 그 세력을 키워나갔다. 포도청에서조차 이 같은 행위를 걱정만 할뿐 금하지는 못하였다.
초상이 나면 상여를 메고 날라야 하니 이들을 완전히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검계는 조직마다 오늘날의 ‘조폭’처럼 각각 특정한 명칭을 붙였다. 별자리 이름을 따다가 ‘28수(宿)계’라고 부르거나, 고상한 선비들을 흉내 내어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 하기도 했다.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자료센터)(사진: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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